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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각인(刻印)-한국근현대목판화 100년’의 참여작가 중김해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정이 판화가의 작업실을 찾았다.여든을 바라보는 고령에도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는 그에게자신만의 작품세계와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는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글 김미영 사진 김정민예술가의 불씨가 머문 자리를 찾아김해시 생림면의 산속에 자리한 작업실 찾기는 쉽지 않았다. 헤매고 헤매다 간신히 마당 깊은 집으로 들어섰다. 위채와 아래채 사이의 작은 별채 통창 너머로 한 어르신이 손짓한다.조그만 여닫이문을 열고 마주한 주정이(78) 판화가의 희고 긴 눈썹과 무심한 듯 형형한 눈빛이 남다른 아우라를 발산한다.두 평 남짓한 온돌방의 아랫목을 내주며 오는 길 힘들지 않았냐고 툭 던지는 말투에서 특유의 투박함과 따스함이 묻어있다. 덕분에 온돌의 온기가 퍼지듯 긴장이 스르륵 풀린다.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하게 됐다며 농도 던진다. <경남공감>과 만날 운명이었는지 모르겠다며 한바탕 웃었다. 시사만화가, 사진가 거쳐 70년대 중반부터 판화가주 작가는 열일곱에 일간지의 연재만화로 시작해 네 칸짜리 시사만화를 그리게 되었다. 신문 연재는 100여 회에 달하고 10권 정도의 만화책도 냈다. 그 후 월남전 참전을 계기로 사진의 기록성에 매료돼 사진가로 활동하다 1970년대 중반 판화로 장르를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40여 년간 그의 손으로 탄생한 판화작품만 1100여 점에 이른다. 판화가로 사는 삶을 택한 연유가 궁금하다. “유년 시절 연필을 깎는 느낌이 좋았다. 사각거리는 손맛의 느낌과 나무 향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오로지 나무가 좋아 판화가가 됐다고 했다.그러고 보니 그는 이야기하는 내내 연필을 꼭 쥐고 있었다. 지금도 작품의 시작은 밑그림을 그릴 연필을 깎는 것부터 한다. 칼맛 나는 목판화를 고집하는 대가의 시작은 언제나 작은 연필 한 자루였다. 목판화는 한국 정서와 맞닿은 친환경적인 예술 장르경남도립미술관 특별전 ‘각인(刻印)-한국근현대목판화 100년’에 전시된 주 작가의 작품은 가로 35×세로 35cm 안팎의 소형 목판화 20여 점이다. 향토성 짙은 자연과 사람의 삶을 간결한 구도와 독자적인 칼맛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중에 작품 ‘횃불’이 디자인된 홍보 포스터가 주목할 만하다. 목판화 특유의 칼맛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고, 경남의 작가라는 상징성도 있어 대표 이미지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전시 기획자가 전한다.작업실로 쓰고 있는 아래채로 자리를 옮겨 그의 작품 이야기를 들었다. 불 냄새가 난다 했더니 벽난로에 장작이 활활 타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벽난로 옆에는 대량의 목판화 원판이 책처럼 빽빽하게 꽂혀있어 오랜 시간 작업에 매진해온 판화가의 작업실임을 짐작하게 한다. 먹을 머금은 판화 원판부터 스케치만 하고 내버려 둔 것, 반쯤 새기다 만 것, 쪼개진 것 등 창작의 산물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공간이다.작품에 몰입할 때는 힘든 것도 없고 되레 정신이 맑아져 실수도 안 하게 된다는 주 작가는 목판화의 매력을 “한국적인 정서를 담기에 어울린다. 나무, 한지, 먹물 등 모든 재료와 과정이 친환경적인 작업”이라고 말한다. ‘마음 가는 대로’ 작품 즐기는 참 예술인주 작가는 완벽하게 계산된 작업을 원하지 않는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룩한 결과물은 인위적이고 여유가 없다며 가차 없이 난로 속으로 던져버리는 단호함이 있다. 그리고, 지우고, 새기고, 도려내는 작업 가운데 맛보는 의도치 않은 기대감이 좋단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듯 보이지만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어긋남이 없이 고독한 예술가의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중이다. 올해 서너 군데서 전시 출품 제의가 있어 검토 중이며, 틈날 때마다 끄적거리는 버릇은 여전해 그 생각들을 쏟아내느라 예술가의 불씨는 꺼질 줄을 모른다. 글 쓰는 능력 또한 남다른 그는 산문집도 더러 썼다. 한 글귀가 그의 예술관을 대변하는 듯하다. “내 작업은 그리기와 지우기의 경계를 모색하는 여정이다. 포만의 거북함과 허기의 고통, 그리기의 절제와 사유의 압축, 그 눈금의 설정에 관심을 기울인다. 필요에 따라서는 박아낸 화면에 덧칠을 하거나 지우기도 예사이고 판목에 새겨진 원판이 단순한 밑그림으로 전락하는 것마저 개의치 않는다.”- 산문집 <숫돌에 칼을 갈며> 본문 ‘먼 여정’ 중
22.02.09.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들의 생명을 살린 영웅이 있다. 바로 심정지로 쓰러진 사람을 구한 구급대원이다. 꺼져가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땀과 열정을 쏟는 진주소방서 상대119안전센터 ‘하트세이버’ 김재민(42) 소방장을 만났다.글 배해귀 사진 김정민 심정지 환자 4명 살려낸 ‘하트세이버’테니스장에서 함께 운동하던 지인이 쓰러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상대119안전센터 구급 대원들. 김 소방장은 가장 먼저 환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의식·호흡·맥박이 없는 심정지 환자였다.“보통 운동시설에서 심정지가 오면 함께 운동하는 분이 계셔서 소생할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119상황실 대원의 안내로 초기 심폐소생술이 진행 중이었고, 1초라도 빨리 응급처치를 하려고 애썼습니다.”그는 자동심장충격기를 부착하고 정맥을 확보한 뒤 구급대원들과 교대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전기 충격이 필요합니다’는 메시지가 울린다. 즉시 전기 충격을 실시하고 전문기도기를 삽관해 산소를 공급한다. 다행히 환자는 호흡과 맥박이 확인되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응급실에 환자를 인계하면 구급대원의 역할은 끝이 난다. 이후 쓰러진 환자가 호전돼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그는 지난해 응급환자 4명의 생명을 구했다. 생명지킴이라고 불리는 ‘하트세이버(Heart Saver)’도 수상했다. 하트세이버란 ‘생명을 소생시킨 사람’이라는 뜻으로 심정지로 인해 죽음의 위험에 놓인 환자를 적극적으로 심폐소생술 및 긴급 응급처치를 통해 살려낸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환자가 완벽하게 일상생활에 복귀했을 때만 받을 수 있어, 하트세이버는 구급대원의 자부심이자 소중한 명예이다. 지난해 경남의 하트세이버는 소방대원 207명, 도민 15명이 선정됐고, 50명의 심정지 환자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11년차 경력…현장은 항상 어렵고 힘들어김 소방장은 진주소방서 상대119안전센터에서 특별 구급대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구급대원은 현장에서 환자를 응급처치하고 병원까지 이송해 주는 업무를 도맡아 한다. 김 소방장이 시민의 생명을 지킨 지도 올해로 벌써 11년 차. 그런 그에게도 응급 상황이 일어나는 현장은 늘 어렵다고 한다.“상황에 대한 대응은 알고 있지만 워낙 변수가 많습니다. 약 6년 전 심정지로 쓰러진 분의 현장이었습니다. 당시 환자의 심장은 뛰지 않고, 잔파동만 있어 자동심장충격기를 실시했습니다. 3번의 전기 충격에도 환자의 심장은 뛰지 않아 고민이 컸습니다.”그는 병원으로 이동하는 시간에 환자가 잘못될 수도 있다고 판단해 2번의 전기 충격을 더 실시했고, 마침내 환자의 심장은 다시 뛸 수 있었다. 여전히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현장에서 포기하지 않고 응급처치를 한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고 회상했다. 안전한 경남, 함께 만든다김 소방장은 구급대원이 된 후 출동을 갈 때마다 다양한 상황을 마주하지만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을 때 가장 보람이 크다고 했다. 반대로 늦게 왔다고 불만을 토로하거나, 응급상황 중에 옆에서 이것저것 지시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상처도 받는다고 했다. “119대원들은 화재·구조·구급 전문가이죠. 저희를 믿고 따라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그는 안전한 경남은 도민과 소방대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귀띔한다.“하인리히의 법칙이라고 있습니다. 작은 사건의 징후들이 큰 재해를 만드는 걸 뜻합니다. 사소한 잘못을 바로잡아 원인을 분석하고 미리 고치면 대형사고나 실패를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활주변의 위험요소를 미리 제거하면 조금 더 안전한 경남이 되지 않을까요?”일터, 가정집 등 도시 곳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응급상황으로부터 도민을 보호하는 구급대원이 있기에 더욱 안심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항상 긴급상황에 출동하기 바쁜 그이지만, 올해는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아내도 소방대원입니다. 지금은 몸이 아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건강이 회복돼 병원치료가 끝나면 아내와 아들 강현, 강율이와 함께 가족여행을 가고 싶어요.”
22.02.09.출장을 갈 때마다 편의점을 찾아 헤매는 경남도 공무원. 출장을 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영수증을 끊기 위해서다. 그나마 깜박하면 출장비 청구도 하지 못한다. 영수증을 챙기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공무원을 위해 시스템을 개발한 이가 있다. 바로 경상남도 도정혁신추진단 경남 G-랩 정병호(45) 주무관이다.글 배해귀 사진 김정민 ‘나의 불편 = 동료의 불편’이라는 인식에서 착안“밥 먹으러 구내식당을 갔는데 대기줄이 길면 싫잖아요. 저부터 불편했어요. 사무실에서 대기줄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구내식당 배식 대기 밀집도 열람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지난해 1월부터 경남 G-랩 2기로 활동하고 있는 정 주무관. 경남 G-랩(Gyeongnam Government-Laboratory)은 회계·예산 등 일상 사무는 배제하고 혁신과제에만 전념하는 벤처형 실험 조직이다. 그가 맡은 업무는 직원들이 좀 더 수월하고 편리하게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전산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지난해 2월에 개발한 ‘구내식당 대기 밀집도 열람시스템’은 구내식당의 배식 대기 줄을 내부 업무관리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어 점심시간 때 혼잡한 시간대를 피할 수 있고, 코로나19 감염률도 낮출 수 있어 직원들의 호응이 좋았다. 이어 그가 개발한 건 ‘AI 비서’이다. “업무와 관련된 중앙부처의 보도자료를 본인이 미처 모르고 있었다는 직원의 하소연을 듣고, AI 비서를 만들게 되었죠.” AI 비서는 로봇이 스스로 국내 각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의 여러 정보·동향을 24시간 내내 자동으로 찾아내고, 이를 직원 개개인의 업무 특성에 맞게 분류하여 업무용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이다.“경남 G-랩은 별도의 지원 예산이 없습니다. 그래서 폐기처분 대상인 PC 5대를 이용해서 AI 비서를 개발했죠. 지금은 5대 중 2대가 고장 나 총 3대를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잘 돌아갑니다. 하하.” 지난해 최고의 히트작은 ‘원터치 디지털 출장 증빙 시스템’정 주무관이 개발한 3번째 시스템은 직원들의 열렬한 환호와 칭찬 릴레이를 받은 ‘원터치 디지털 출장 증빙 시스템’이다.#지난해 초, 경남도청에 신규 임용된 A 주무관은 첫 출장을 가서 깜짝 놀랄 일을 경험했다. 업무를 마치고 바로 복귀하지 못하고 편의점을 찾는 선배 주무관을 보았기 때문이다. 선배 주무관은 출장 증빙을 위해 출장지에서 구입한 영수증이 꼭 필요하다며 편의점을 찾았다. A 주무관은 4차 산업 혁명시대에 경남도청은 아직도 90년대인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이 사례는 평소 직원들이 출장을 갈 때마다 꾸준히 불편을 호소했으나, 딱히 해결할 방안이 없었다. 이에 정 주무관은 출장지에서 휴대폰 터치 한 번으로 GPS 위치를 기반으로 현지 방문을 증빙해 주는 ‘원터치 디지털 출장 증빙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휴대폰을 터치하는 순간의 현재 위치와 출장자 정보를 암호화하고, 이를 디지털 QR코드 형태로 변환하는 방식이다.“디지털 출장 증빙을 인정받기 위해 행정과와 감사위원회, 경상남도 적극행정위원회에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출장 증빙 시스템은 직원들이 다들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하셔서 정말 뿌듯합니다.” 업무 혁신은 언제든 환영, 많은 의견 부탁 경남 G-랩 4탄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내부 업무관리시스템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My Photo’ 프로젝트를 끝으로 지난해의 개발은 마무리됐다. 그동안에는 휴대폰으로 찍은 업무 관련 사진을 업무용 pc에 옮기려면 일일이 유선으로 폰과 본체를 연결하고 몇 차례 과정을 거쳐 옮겨야 했지만, ‘My Photo’를 이용하면 업무시스템에 단박에 띄울 수 있어 효율적이다.“혁신이란, 못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해서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혁신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직원 여러분들 많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2022년에는 좀 더 획기적인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 구상 중입니다. 또 6월까지인 2기 활동을 잘 마무리하고, 후임인 탁서윤 주무관이 잘 이어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습니다.”직원이 온전히 업무에 집중할 수 있어야 행복한 도민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정 주무관. 그의 바람처럼 디지털 혁신으로 경남도의 스마트도정도 하루 빨리 실현되길 희망한다.
22.02.03.경상남도 빅데이터센터 개소
경상남도 빅데이터센터가 지난 7월 경남연구원(창원시 성산구 용지로) 내에 문을 열었다. 이상용(46) 센터장은 충북연구원 전문위원, 전북교육연구정보원 연구위원, 인천광역시 빅데이터 담당 사무관 등을 두루 거친 전문가로 빅데이터의 성장과 대중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경남의 데이터 활용 기반 조성의 중심이 될 경상남도 빅데이터센터를 찾아가 이상용 센터장과 직원의 목소리를 들었다.Q. 빅데이터를 아는 이도 있지만, 생소해하는 일반인도 많다. 개념을 간단히 설명해 달라.빅데이터란 디지털 환경에서 생성되는 대규모 데이터를 의미한다. 휴대전화와 스마트 기기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가 생산되고 개인의 이력을 관리, 추적할 수 있을 만큼 빅데이터는 우리 삶에 밀접하게 다가와 있다. 한사람, 한사람이 걸어 다니는 빅데이터와 다름없다. 예를 들어 기업이 신상품을 출시할 때도 빅데이터가 기반이 된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빅데이터에 축적된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분석해 제품 개발에 활용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의료, 교통, 범죄, 문화예술, 교육 등 빅데이터의 활용 분야와 성장성은 무궁무진하다. Q. 빅데이터센터는 어떻게 구성됐고, 어떤 일을 하나.빅데이터 활용 저변확대를 위해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데이터 분석 환경과 교육프로그램, 기술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약 91㎡의 공간에는 빅데이터 분석을 위한 각종 소프트웨어를 보유한 분석실과 강의에 최적화된 교육실도 갖추고 있다. 센터장을 포함해 분석과 교육 분야에 3명이 상주하고 있다. 분석실 예약을 통해 누구나 데이터 목록에 쉽게 접근해 열람할 수 있고, 사용승인을 받으면 제한적으로 데이터 활용도 가능하다. Q. 경상남도 정책을 지원한 사례가 있나, 앞으로 제안하고 싶은 분야는.올해는 인프라 구축과 교육프로그램 운영에 집중하는 한 해였고, 내년부터 정책지원 부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계획이다. 현재 경상남도 주차 문제와 관련한 분석과제를 협의하고 있다. 불법주차에 대한 빅데이터 수집 및 분석을 거쳐 도민들의 주차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도민들이 쏟아내는 막대한 정보를 분석해 예산집행의 효율성과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코로나19 전·후 경제 변화, 인구문제, 청년 유출 문제 등이 빅데이터로 분석해 보고 싶은 분야이다. Q. 도민이 경남 빅데이터센터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접할 수 있나.그렇다. ‘경남 빅데이터 허브 플랫폼’을 통해 들어가면 된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플랫폼이나 앱이 제공되면서 실생활이 편리해졌고 개인의 정보 이해도도 높아지면서 경남도에서도 지난 8월 ‘경남 빅데이터 허브 플랫폼’을 구축하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경남의 공공데이터, 분석현황, 통계 자료, 분석실 이용 및 교육 관련 정보도 자세히 안내하고 있으므로 빅데이터센터 방문 전에 ‘경남 빅데이터 허브 플랫폼’ 정보를 이용해 보길 권유한다. Q. 빅데이터센터 개소 후 경남의 빅데이터 생태계 전망은.빅데이터센터가 지역의 거점으로 현재 관·대학·기업들과 소통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고무적이다. 동남지방통계청 ‘동남권 광역지표 개발’ 협력, 경상국립대 ‘빅데이터 교육과정’ 협의, 경남 혁신제조데이터 협의 등 기관마다 역할은 다르겠지만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협력하고자 하는 의지는 강하다. 업무협약을 통해 지역 내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 활용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빅데이터 환경을 조성해 나간다면 경남의 빅데이터 생태계가 동반 성장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경상남도 빅데이터센터위치 창원시 성산구 용지로 248(용호동) 연락처 055) 580-0295경남 빅데이터 허브 플랫폼 https://bigdata.gyeongnam.go.kr/index.gn (경남공감 2021년 12월호) 글 김미영 사진 이윤상
21.12.15.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배고플 때, 반찬이 많이 없어도 따끈따끈한 흰쌀밥만 있으면 한 그릇 뚝딱이다. 수천 년 동안 쌀로 밥을 지어먹은 민족답게 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오는 11일 농업인의 날을 앞두고 나름의 철학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농업인을 만났다. 우리나라 토종쌀을 보고 첫눈에 반해 경남에서 토종벼 40여 종을 키우고 있는 농부 우봉희(48) 씨다. 농업을 사랑한 청년, 토종쌀에 반하다우봉희 씨는 창원 동읍에서 나고 자랐다. 평생 숙명처럼 농사를 지어온 부모님은 자식들은 번듯한 직장에서 힘들지 않게 일하길 바라셨다. 2남 4녀 중 막내였던 그를 위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더욱 애틋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농업이었어요.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농사는 힘들다고, 돈이 안 된다고 직장 생활을 하길 바라셨죠.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 생활도 했지만 농사를 짓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들었어요. 결국 33살 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감농사를 시작했습니다.” 3년간 감농사를 하다가 수익이 좋지 않아 벼농사로 전환한 그는 토종쌀을 처음 접하고 그 매력에 푹 빠졌다. “토종쌀 색깔이 오방색이에요. 청색, 적색, 백색, 흑색, 황색 5가지입니다. 너무 이쁘고 특이해서 마음이 확 가더라고요. 다른 사람과는 좀 차별화된 벼농사도 짓고 싶어 토종쌀 농사도 함께 시작했습니다.” 2014년부터 자연농법으로 토종쌀 재배지난 2014년부터 토종벼 농사를 시작한 우 씨는 지금까지 약 200여 종의 토종벼를 재배했다. 그는 첫해 농사가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3만 평 벼농사 중 3~4000여 평에 토종벼를 심었어요.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제. 이렇게 3가지를 실천하는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었죠. 토종벼는 다수확, 대량 생산이 안돼 사람 손으로 일일이 해야 해요. 모내기와 벼 베기도 손으로 해야 하고, 탈곡도 직접 해야 하죠.” 그는 자연농법으로 짓는 벼농사는 기다림의 시간도 꽤 길다고 설명했다. 비료와 제초제로 찌든 땅이 땅심을 회복해 다시 건강해지려면 약 5년이 걸리기 때문이란다. “땅이 회복하는 동안 벼도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애를 많이 씁니다. 첫해에는 벼가 비실비실해서 못 봐줄 정도로 애처롭지만, 그걸 이겨내고 5년이 지나면 벼는 잘 자라고, 씨알도 굵어져요. 그렇게 잘 자라는 토종벼는 그대로 두고, 이겨내지 못하는 벼는 다른 종류로 바꿉니다.” ‘전국토종벼농부들’ 정회원이기도 한 그는 매년 30~40종의 토종벼를 재배한다. 첫해에는 약 200만 원을 주고 토종 볍씨를 구입했지만 지금은 ‘전국토종벼농부들’회원들과 볍씨를 서로 교환하고 나눈다. 전국적으로 토종벼를 연구하며 재배하는 이는 약 200명 정도다. “지역마다 그 지역 생육환경에 맞는 벼가 있어요. 그걸 정확히 모르니 전국에 있는 토종벼 농부들과 서로 교환하며 지역에 맞는 벼를 찾고 있죠. 지난 7년 동안 지어보니 4종의 토종벼가 대산면에 맞더라고요.” 우리나라 토종벼는 1451종 1911~1913년 한반도 토종벼를 조사한 책 <조선도품종일람>에 따르면 우리나라 토종벼는 총 1451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토종쌀과 개량종 쌀은 확연히 차이점이 난다고 했다. 가장 먼저 토종쌀은 ‘까락’이라는 것이 있다. 까락은 벼나 보리에 털처럼 자라난 것을 말한다. 까락은 벼의 온도와 수분을 조절하고,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또 야생 상태에서 종자를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까락이 있으면 탈곡 과정이 불편하고 번거로워 대부분의 개량종에서는 까락을 볼 수 없다. 또 다른 차이점은 키다. 개량종에 비해 토종벼는 키가 크다. 다른 풀과의 경쟁에서 햇빛을 더 받기 위해 키를 키웠고, 더불어 화학비료가 없던 시절 땅의 양분을 최대한 얻기 위해 뿌리를 깊이 내린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토종벼는 고향과 이름이 있다. 해당 품종을 재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이름을 붙이게 된 경우가 많다. 흑갱은 검은 수염, 북흑조는 북방지역에서 키우는 검은색 벼 등 그 이름을 통해 특성이 나타난다. “400~500년 된 토종벼, ‘전통벼’로 불리기를”그는 매년 종자가 다른 토종벼 농사를 지으며 토종벼 크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토종벼를 키우는 농부답게 벼 수확이 끝난 겨울이 되면 토종벼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다. 토종벼를 공부할수록 토종벼가 ‘전통벼’로 불렸으면 한다고 했다. “요즘 사람 대부분이 먹는 개량종 쌀은 약 20~30년 정도 됐어요. 토종벼로 불리는 전통벼는 최소 400~500년이 되었죠. 문헌을 통해 그 기간을 짐작하지만 천 년 이상 된 것도 있다고 봅니다. 식물은 1년 동안 자기가 겪어왔던 것을 자기 새끼인 씨앗에게 줍니다. 전통벼는 그걸 400년 이상 반복한 거죠. 그만큼 오랜 기간 우리나라 땅에서 적응했고, 외부환경에 대한 저항력이나 균을 이겨낼 수 있는 힘도 토종이 훨씬 좋아요.” 인간과 자연의 건강한 공존 위해 ‘식물복지’ 절실그는 식물복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동물복지는 들어봤어도 식물복지는 처음 듣는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농약을 치지 않고,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요. 또 완전히 발효되지 않는 퇴비를 쓰지 않고, 제초제를 쓰지 않아요. 그것이 바로 식물복지”라고 설명한다. 땅도, 식물도, 동물도, 사람도 모두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식물복지가 꼭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하는 그는 작은 희망도 전했다. “식물복지로 농사지은 농작물을 많은 분들이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5살에서 16살 아이들이 국가의 미래잖아요. 우리나라가 건강하려면 어린 친구들이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린 학생들이 건강하게 농사지은 쌀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경남공감 2021년 11월호) 글 배해귀 사진 김정민
21.11.12.